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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미디블(Going Medieval) : 족제비 관찰 일지

( 2024. 9. 22 작성 글)고잉 미디블에서 마을을 운영하다보면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자주 마주하곤 한다. 정착민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당연히 침략자들이지만, 열심히 가꾼 작물을 죄다 뜯어먹거나 죄없는 가축들을 도륙내기도 하는 야생동물은 고잉 미디블 안에서는 자연 재해에 가깝다. 마을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축들이 한 두 마리 없어도 문제 되지 않을 때면 모르겠지만, 초반에 가까스로 교역해서 들여온 귀한 닭이 야생동물한테 죽기라도 한다면 꼬접하고 싶은 마음에 손발이 바들바들 떨린다.족제비는나의원수그 중 가장 악랄하고 파렴치한 야생동물 족제비(나의 원수)를 소개하고자 한다.(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할 예정) 족제비는 야생에 출연하는 쪼끄마한 육식 동물이다. 이 놈은 큰 동물은 건드리지 않는데..

왜 게이머들은 게임을 접는 대신 트럭을 보낼까?

디지털 공간의 장소성과 '항의(Voice)'의 정치경제학 최근 게임 뉴스를 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풍경이 있다. 바로 게임사 사옥 앞을 맴도는 '시위용 트럭'과 '마차', 심지어는 하늘을 수놓는 '비행선'까지 등장하는 진풍경이다. 확률형 아이템의 불투명한 조작 논란부터 유저의 목소리를 배제한 일방적인 운영에 이르기까지, 불만을 품은 유저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수백, 수천만 원의 비용을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현실의 거리로 나선다. 과거의 게이머들이 게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저 조용히 '접고' 다른 게임으로 떠났던 것과 비교하면, 작금의 사태는 꽤나 이질적이다. 왜 그들은 그저 소비를 중단하는, 이른바 가장 쉽고 확실한 길인 '이탈(Exit)' 대신 막대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감정적 노동을 들여 ..

발헤임(Valheim) 모드 설치와 추천 모드 정리

작년 초에 꽤 오랜 시간 즐겁게 플레이했던 게임 발헤임(Valheim). 신규 업데이트가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최근 다시 복귀하여 새로운 월드에서 현재 엔드 콘텐츠까지 복습 정주행을 했다. 북유럽 신화의 거칠고 신비로운 세계관을 구현한 '발헤임(Valheim)'은 뛰어난 공간 상호작용과 자유도 높은 건축 시스템으로 독보적인 생존 게임의 위치를 확립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바닐라(Vanilla) 환경으로 장시간 플레이를 지속하다 보면, 비효율적인 인벤토리 관리나 반복적인 노동 중심의 시스템에서 오는 구조적인 피로감을 마주하게 된다. 발헤임의 진정한 묘미는 플레이어의 목적에 맞게 세계를 통제하고 환경을 구축해 나가는 데 있다. 이를 위한 적절한 모드(Mod)의 도입은 게임 내 공간과 시스템을 보다 합리적으..

엘티보의 풍경

여섯 번째 마을, 엘티보, 처음으로 도면과 계획을 가지고 만들었다.고잉 미디블 여섯 번째 마을인 엘티보, 마을 이름을 엘티보로 짓기는 했지만 그저 여러 마을 이름을 예쁘게 지을 자신이 없어서 테일즈위버 마을 이름을 돌려가며 썼을뿐 진짜 엘티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맵 시드는 546109699 구릉지이다. 중앙에 폭포와 강이 하나 질러가고 가운데는 건축에 용이한 광활한 평지, 서쪽과 북쪽으로 꽤 높은 언덕이 형성되어있다. 지하 자원이 풍부해서 다량의 석회석을 확보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대부분 창고로 쓰이는 지하실, 식품 등을 보관하는 창고에는 얼음을 놓았다.시작과 동시에 대규모 건축을 하느라 정착민들이 거의 1년 가까이 정말 죽지만 않을 정도로 고생을 했었다. 겨울이 와서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

시공간 압축의 딜레마와 ‘디지털 도시 재생’

게임 세계는 왜 유령도시가 되는가 오래된 라이브 서비스 게임, 특히 MMORPG를 즐겨본 유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대규모 업데이트와 함께 시작되는 이른바 ‘점핑 이벤트’를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이는 신규 유저를 유치하기 위해 과거 수개월이 걸리던 레벨업 구간을 단 몇 시간 만에 돌파하게 해주는 파격적인 조치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추고 고착화된 생태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불가피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화려한 축제의 이면에는 기존 유저들의 묘한 상실감이 맴돈다. 이들은 자신이 밤새워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고 길드원과 담소를 나누던 초보 마을이 통째로 삭제되거나, 누구도 찾지 않는 버려진 땅으로 전락하는 풍경을 씁쓸하게 목격한다. 내 캐릭터가 강해지기 위해 바쳤던 절대적인..

엘티보 시작

기존 마을의 인력과 자원을 활용하여 대규모 건축을 할 계획도 있었으나 재개발보다는 신도시 개발이 품이 훨씬 적게 들 것이라 판단해 새로운 마을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름 정들었던 카울 안녕...​게임을 좀 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느꼈을 수도 있는데, 마을 이름은 내 작명 센스가 부족해 예전에 즐겨했던 게임인 테일즈위버의 마을 이름들을 돌려가며 쓰고 있었다. 메이저한 마을 이름은 다 써버려서(심지어 클라드는 설정도 제대로 못하고 시작해버렸는데 세이브 파일이 생겨서 이름을 다시 쓰지도 못했다) 엘티보까지 가게 되었다.​아무튼 이 마을의 메인 콘텐츠인 '성 짓기'는 구글에 ‘성 도면’을 검색해서 가장 빨리 눈에 들어온 빌트모어 하우스(Biltmore house)의 평면을 참고하여 짓기로 결정했다.​학부 수업 시간..

고잉미디블(Going Medieval) 시작

코로나가 재차 유행하며 사무실에 한바탕 역병이 창궐했다.(다시 생각해보니 고잉 미디블의 시대적 배경과 정확히 일치) 굉장히 관대하게도 5일의 격리 휴가를 준 회사에 감사하지만, 엄청나게 기침을 해대니 어디 밖에 나갈 수는 없고 집 안에서 이 긴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스팀에서 고잉미디블이라는 게임을 발견하게 되었다.Steam - Going Medieval시스템에 익숙해지기까지 몇 번의 마을을 뒤집어엎어 저 멀리 평행세계로 보낸 마을이 벌써 4개에 이르던 차에 5회 차 플레이에 드디어 안정적인 촌락 하나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첫번째 마을, 셔트코트 : 생각 없이 지형을 산지로 골랐다가 흙이 없어서 돌만 캐다 끝났다.두 번째 마을, 나르비크 : 알 수 없는 이유로 맵에 물이 가득 차서 ..

폐허가 남지 않는 세계, 우리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디지털 장소성의 기반에 관한 고찰 " 당신이 떠난 그곳에는, 발자국이 남아 있을까요?" 물리적 현실에서 장소의 기반은 명확하다. 그것은 '땅'이다. 고향 집의 낡은 담벼락, 학교 운동장의 모래 흙, 자주 가던 카페의 손때 묻은 테이블. 현실의 장소성은 물질의 풍화(Weathering)와 함께 그곳에 물리적으로 퇴적된다. 비록 시간이 흘러 무너져 내릴지언정, 그 잔해는 그곳에 남아 역사를 증언한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는 다르다. 10년이 지나도 몬스터는 같은 자리에서 부활하고, 성벽은 무너지지 않으며, 계절은 코드로 고정된 채 순환한다. 물리적 퇴적이 불가능한 세계. 그리고 언젠가는 영원히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는 세계. 그렇다면 디지털 장소성은 도대체 어디에 기반을 두고 존재하는..

‘마선생’의 품격과 ‘지향색’의 사회학

디지털 공간에서 나를 증명하는 RGB의 미학​※마비노기 싴샐러스 류트 - 수야의꽃 지염도서관(https://lute.fantazm.net/dye) “그냥 다 검은색 아니에요?”​​게임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소위 '망겜'의 징후가 짙어질 때, 유저들은 살길을 찾아 다른 게임으로 대규모 이주를 감행하기도 한다. 2021년, 게임 업계 전반에 걸친 트럭 시위와 불매 운동이 이어지던 시절, 역시 큰 위기를 맞았다. 그때 넥슨을 떠난 수많은 유저들이 향한 곳은 당시 '갓겜'으로 떠오르며 난민들의 피난처가 되어주던 였다.​보통 타 게임에서 넘어온 유저들은 '메난민( 난민)'처럼 출신 게임의 앞글자를 따서 난민으로 불리곤 했다. 하지만 유독 출신 유저들에게는 ‘마난민’뿐만 아니라 '마선생'이라는, ..

코드 위에 세운 '우리만의 영토'

던바튼 광장의 점유자들과 길터에 관한 고찰​"왜 다들 여기 가만히 서있는 거예요?"​MMORPG 마비노기의 던바튼 광장에 들어서면 기묘한 역설과 마주한다. 역동적인 모험을 위해 설계된 이 가상 세계의 중심부에서, 정작 가장 많은 유저는 '정지'해 있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캐릭터들이 사냥도, 거래도 하지 않은 채 광장의 특정 구획을 점거하고 있다. 유저들은 이를 '길터(길드가 자리잡는 장소, '길드 터전'이 어원으로 추정 됨)'라 부른다.​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이 멈춤은 시스템 자원의 낭비이자 비생산적인 행위다. 그러나 사회학적 시선으로 이 현상을 해부하면, 그곳에는 디지털 공간을 물리적 실재(Reality)로 치환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숨어 있다. 이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